AI 시대, 왜 다시 인문학인가?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위한 기술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할 시점에 서 있다. 2025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인문정신문화 확산 사업’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문제의식에 대한 응답이다. 이 사업은 단순한 인문학 진흥을 넘어, 디지털 과몰입, 소외계층의 교육, 청년의 정체성 탐색 등 사회 곳곳의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인문학이 직접 개입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총 100억 원 규모의 예산이 배정됐다. 이는 인문학이 더 이상 고전이나 철학 속에 머무는 학문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사회적 실천’의 영역임을 보여준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공지능 시대가 ‘무용 계급(useless class)’의 등장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미래 사회에서 단순히 일자리를 잃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역할과 존재의 의미마저 상실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문제이며, 결국 ‘우리는 누구이며, 어떤 가치를 기준으로 사회를 설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기술이 빠르고 정확한 답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그 기술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인문학은 그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는 나침반으로 기능하며, 인간다움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가장 본질적인 기반이 된다. 특히 AI 알고리즘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지금, 사생활 침해, 편향된 의사결정, 책임 회피와 같은 윤리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성찰이 필수적이다. 데이터는 사실을 말하지만,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인간이 감당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여전히 반문할 수 있다. 그래도 인문학은 결국 ‘이상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데 그치는 것 아닌가? 기술을 설계하거나 코드를 짜는 데 직접 개입하지 못하니,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지 않느냐는 회의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은 인문학의 역할을 너무 협소하게 보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실제 AI 개발의 전 과정을 살펴보면, 인문학은 단지 외곽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학문이 아니라, 기술이 설계되고 작동하며 사회에 적용되는 ‘내부 논리’ 그 자체로 기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AI는 더 이상 단순한 계산기나 정보 제공 도구가 아니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의 결정을 대신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렇기에 기술은 이제 ‘정확히 작동하는가’를 넘어 ‘옳게 작동하는가’를 질문받는다. 그리고 그 질문의 출발점이자, 기준을 세우는 언어가 바로 인문학이다.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어떤 가치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인문학적 고민이다. 데이터 수집과 알고리즘 설계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 사회는 수치화할 수 없는 감정과 맥락, 역사를 품고 있기에, 기술이 그것을 정확히 해석하기 위해선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
예컨대, 노인 돌봄 로봇이 단순히 약 복용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가 아니라, 정서적 교감과 사회적 연결을 고려한 ‘돌봄의 주체’로 설계되기까지는 철학, 심리학, 인류학의 고민이 함께 담겨야 한다. 자율주행차가 사고 시 누구를 우선 보호할지를 판단하는 알고리즘 뒤에도 윤리학과 법철학의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 기술의 ‘외부’에서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기준을 설계하고 판단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이유다.
인문학은 과학을 깊게 만들고, 과학은 인문학을 정교하게 만든다. 어쩌면, 인문학이 과학을 정교하게 만들고, 과학이 인문학을 깊게 만들지도 모른다. 디지털 기술과 융합된 인문학은 더 이상 ‘느리고 낭만적인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실천과 개인의 성찰을 동시에 견인하는 미래의 추진력이자,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가장 본질적인 자원이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인간다움을 결정짓는 시대, 우리는 다시 인문학 앞에 서야 한다. 그리고 질문해야 한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기술을 사용하는가?
문체부의 ‘인문정신문화 확산 사업’ 관련 기사는 아래 링크에서⬇️
http://www.koreafuture.co.kr/news/view.php?idx=19409&mcode=m6272m3
